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광려로 542(신감리)
창건 664년 · 삼국시대
조계종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신감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 소속 사찰. 665년(문무왕 5) 원효 대사와 중국의 승려 은신이 함께 창건했다고 하지만 근거를 알 수 없으며 이후의 연혁 또한 알려지지 않는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과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 사찰이 존재한다고 언급되고 있어 조선 시대에도 이어져왔음을 알 수 있지만 그 후의 자세한 연혁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는다. 조선 후기의 연혁은 현재 광산사에 남아 있는 현판과 상량문 등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1852년(철종 3) 승려 율암치흡(栗庵致洽)이 찬술한 「대웅전 창건기(大雄殿創建記)」에 의하면, ‘1848년(헌종 14) 박계준(朴啓駿)이 돌아가신 부모의 극락왕생을 위해 극락전을 중건하였고, 1852년 대웅전을 중수하여 소조불상(塑造佛像)을 봉안하였으며, 이때 극락전을 상법당(上法堂), 대웅전을 대법당(大法堂)이라 칭했다’고 한다. 1872년(고종 9) 율암치흡이 찬한 「광산사 중건기(匡山寺重建記)」에는 ‘1869년 승려 용호(龍湖)를 중심으로 모연(募捐)을 시작하여 이듬해 극락전을 중창하고 아울러 삼존상(三尊像)을 봉안했다’고 한다. 1887년(고종 24) 승려 법전(法典)이 찬한 「극락전 창건문(極樂殿創建文)」에는 ‘1870년(고종 7)을 전후하여 사찰이 매우 쇠락해졌는데, 창건문을 짓던 그해 봄 승려 대성(大成)이 모연하여 극락전을 짓고 단청을 했다’고 한다. 한편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에 대웅전을 중건하는데 상량문을 구한말의 애국지사인 장지연(張志淵)이 찬술했다. 그 「광산사 중수 상량문(匡山寺重修上樑文)」에 의하면 1742년(영조 18) 승려 빙연(氷演)에 의해, 그리고 1805년(순조 5) 승려 승흡(勝洽)에 의해 대웅전이 중건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다른 사찰과 마찬가지로 6·25 전쟁으로 인해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다. 1960년대에 승려 대순이 대웅전을 건립하면서 명맥이 이어지다가, 1982년에 승려 영우가 선원과 요사를 신축하고, 1999년에 승려 공우(空宇)에 의해 현재의 극락전이 건립된 후 점차 전각을 보완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