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761
창건 571년 · 삼국시대
조계종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성흥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 대조사(大鳥寺)는 백제 성왕 때 창건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통일 신라를 거쳐 고려 시대에 삼층석탑[대조사석탑]과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扶餘 大鳥寺 石造彌勒菩薩立像)을 조성하였고 고려 후기에 중창하였으며, 조선 시대에도 사대부들이 즐겨 찾을 정도로 사격을 갖추고 있었다. 대조사는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성흥산 중턱에 있다. 대조사는 527년(백제 성왕 5) 담혜가 창건하였다는 「사적기(寺蹟紀)」와, 동일한 시기에 겸익이 창건하였다는 「대조사미륵실기(大鳥寺彌勒實記)」의 기록이 공존하지만, 언제 창건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9~10세기에 제작된 기와가 발굴되어 신라 후기, 고려 전기에 이미 존재한 사실을 알 수 있고, 석조미륵보살입상과 삼층석탑을 통하여 고려에서 나름대로 사격을 갖추고 있었던 사실도 알 수 있다. 또한 무량사의 도승 진전장로가 고려 원종 재위기인 1259~1274년 석조미륵보살입상을 중수하였다는 「대조사미륵실기」의 기록으로 보아 13세기 후반에 중창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 후 16세기까지 대조사의 현황을 파악할 만한 자료가 전혀 없었는데, 『죽계일기(竹溪日記)』에서 조응록이 1608년(선조 41) 4월 초파일에 대조사에 다녀왔다고 한 점과 『필운고(弼雲稿)』에서 김영행이 어린 시절에 대조사에서 독서하던 아버지를 기리며 1736년(영조 12) 5월 대조사를 찾았다고 밝힌 점에서 17세기에도 사대부들이 여전히 즐겨 찾을 정도로 사세를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영행이 대조사가 이미 쇠락한 모습을 안타까워하였다고 한 점에서 18세기에는 많이 쇠락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1750년대 초에 작성된 『해동지도(海東地圖)』와 1745~1765년 사이에 작성된 『비변사인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에 ‘대조암(大鳥庵)’으로 표기된 것도 쇠락한 이유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1909년 편찬된 『사찰고(寺刹考)』에서 본존불이 관세음이었다는 사실만 언급하고, 1929년 편찬된 『부여읍지』에서 1914년 이후 사찰의 건물이 관음전 1동뿐이었다고 밝힌 이유도 쇠락과 관련이 있다.(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